주자 심성론, 동양윤리의 담론(유수아) |
이름: 晴野 2021/9/6(월) | |
Re..주자 심성론, 동양윤리의 담론 ┼ ▨ 주자 심성론, 동양윤리의 담론 - 유수아 ┼ │ 조현규 『동양윤리의 담론』의 서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 │ “주희는 인심은 인성에서는 기질지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육신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인욕에 이끌릴 수 있어서 위태롭다고 하고, 도심은 본연지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성명의 올바름 곧 천리이므로 오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신령함이 천리를 생각하는 것이 도심이요, 욕구를 생각하는 것이 인심이라고 하였다.” 『동양윤리의 담론』 p. 288 │ 인심과 도심은 모두 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심이 무엇을 지각하느냐에 따라 인심, 도심으로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각하는 것은 기이고, 또한 현실에서 성은 기질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기질지성이기에 인심과 도심은 모두 기질지성에서 발현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서술에서 인심은 기질지성에, 도심은 본연지성에 해당한다고 하여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는 단지 도심과 본연지성은 순선하고, 인심과 기질지성은 가선가악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아니면 제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는 것인가요? 원문을 찾아보려고 해도 그 출처가 나와있지 않아 질문드립니다. 답: 인심과 도심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그렇게 나누는 것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그렇게 했는 그것을 주자도 그렇게 한 것으로 오해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수아 학생이 알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 │ 이어서 “또한 인심은 이기심에 의하여 나오는 사적인 욕구요, 도심은 공공한 욕구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 나눔의 경계는 미미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서 먹고자 하는 것은 공공한 욕구이고, 감미로운 맛을 요구하는 것은 사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로 도심은 도의를 지각한 마음으로 “배가 고파서 먹고자 하는 것”이 이 자체로 도심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고자 하는 것”은 형기에 따른 것으로 그 자체로 악이라고 할 수 없고, 도심을 따른다면 도심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인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요? 답: 예 맞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런 경우 인심이 도심의 통제 하에서 충족된 것입니다. 다만 그 책에서 예로 든 것은 괜찮습니다. 배고플 때 먹는 것은 도리이니 고심이고,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애쓰는 것은 인심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더라도 돌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인심이면서 도심의 허락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도심상위일신지주(道心常爲一身之主)라고 하는 것입니다. │ │ 답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유수아: 본문에 제가 누군지 밝히지 않아 댓글로 작성합니다. 윤리교육과 19학번 유수아입니다! -[09/06-16:43]- ┼ 유수아: 제가 도리를 너무 협소한 의미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해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09/07-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