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교수님 논문내용에 대해 질문있어요 - 윤촌인 ┼
│ 지난번 저의 질문에 긴 답변 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자꾸 질문드리는 것이 제가 수업시간에 소홀해서 그런 것 같아 참 죄송스럽습니다.
│
│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논문 [愼獨齋 金集의 心情說- 栗谷學派의 心情說 展開를 中心으로 -]
│ 을 읽었는데요.. 논문내용중에,
│
│ [어떤 대상이 나를 향해 다가오거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가 문제이다. 그런데 이 人心道心은 단지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한 사실판단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좋고 싫음, 혹은 옳고 그름 등의 가치판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판단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혹은 퇴계?)에 비해서
│ 율곡의 심정론은 외부대상의 지각판단 과정을 설정하지 않고 다음 내용과 같이 단지 즉각적인
│ 외부사물의 작용반작용을 하기 때문에,
│
│ [栗谷은 朱子와 달리 외부 대상에 대한 知覺判斷의 과정을 설정하지 않는다. 즉 어떤 외부 사물이 나에게로 다가올 때, 나는 그에 대하여 나의 氣가 즉시 反作用을 일으킨다... 栗谷은 행위의 동기를 기준으로 하여 自身의 육체를 위한 것이면 人心으로, 道義를 위한 것이면 道心으로 구분한다. 이것은 외부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반작용으로 일어난다]
│
│ 율곡사상의 관점은 퇴계의 가치판단(좋고 싫음)보다는 오히려 사실판단(있고 없음)쪽에 가깝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어떤 외부사물이 눈에 비칠 때, "그것의 가치를 따질 새가 없이" 보자마자
│ 어떤 생각(마음)이 들었습니다. '의'가 따져보니 이 생각은 성명에서 바로나온 '도의'를 위한 생각이었습니다.
│ (여기서 율곡은 생각이 든 것 자체가 '정'(율곡은 인심도심도 정이라고 본다)이겠지만 퇴계라면 (물론 여기서 논하면 안되지만..) 아직은 판단과정의 상태이니까 '정'이 발하지 않은 상태라고 봐도 될까요? 전에 답변에서 퇴계에 대해 정을 따진다면
│ 지각은 아직 정이 발하지 않은 미발이라고 하셨기에..)
-----------------------------------------------------------------

답변: 퇴계의 입장에서는 대상에 대한 판단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미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情을 기준으로 말할 때)

│
│ 반대로 그 생각이 형기에서 나온 생각이었다면 '의'가 그 인심을 '도심'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구요..
│
│ 결론적으로 율곡은 퇴계의 "사물의 가치를 따질 때의 그 기준이 성명이냐 육체이냐 인것의" 가치판단과 달리
│ 일단 사실판단(사물의 존재 인지)후 든 '생각'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즉 사물만에 대해
│ 서는 사실판단만 하고 가치판단은 사물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 반응한 내 마음에 대해서 한다고
│ 볼 수도 있는 것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
│ 추신 - 위에 쓴 내용중에 제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아직 확신이 잘 안서서..^^;;
│
-------------------------------------------------------------

답변: 성리학에서는 서양철학에서처럼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를 깊이 있게 자세히 분석하여 다루지 않습니다. 단지 가치판단의 기준을 주로 문제삼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있다 없다 혹은 사과이다 꽃이다 등의 사실판단은 우리 내부로부터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시비선악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공자가 '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고 하였을 때, 이미 보이거나 들렸기(見/聞) 때문에 예가 아닌지를 아는 것인데 이것은 문제 삼지 않고, 보이거나 들린(見/聞) 다음에 다시 유심히 보거나 듣는 것(視/聽)만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見/聞하였을 때, 그것이 예인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하였는가, 즉 性命인가 形氣인가에 따라 퇴계는 인심과 도심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평가의 결과에 따라 사단이나 칠정의 반응이 일어나서 다시 유심히 보거나 듣는 視聽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율곡은 見/聞 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은 퇴계와 같지만, 그에 대한 평가부터 이미 반응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그 반응의 동기에 따라  선악을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곡은 인심도심이 情만이 아니라 情과 意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봅니다.

여기서 학생이 율곡은 처음에는 사실판단만 하고, 나중에 그에 대한 생각의 가치를 따진다고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율곡은 인심도심終始說, 즉 인심으로 시작해서 도심으로 끝나기도 하고 도심에서 시작하여 인심으로 끝나기도 한다는 이론을 주장합니다.(물론 처음과 끝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만 학생이 율곡의 가치판단은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평가활동 자체, 즉 생각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성리학의 일반적인 이론에 의하면, 장미꽃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아름답지않다거나 하는 것은 서양에서처럼 가치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성리학에서 문제삼는 것은 장미꽃을 아름답다고 할 때 어느 기준에 의해서 아름답다고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퇴계는 아름답다고 평가한 것까지는 선악의 문제를 개입시켜 문제삼지 않고, 그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반응을 일으켰을 때부터 비로소 선악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편 율곡은 아름답다는 평가에서부터 선악을 나누어서 문제삼는 것입니다. 즉 장미꽃이 (호박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평가에는 이미 자신의 육체를 위한 동기가 들어 있으므로 惡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퇴계는 그 평가 자체에 대해서는 선악을 문제삼지 않고, 호박을 뽑고 장미를  심겠다는 식의 반응이 일어날 때 선악을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장미꽃이 아름다우므로 호박을 심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장미를 심어 보기 좋게 하는 것은 선으로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심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실판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실판단이 아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기에 담임선생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때 학생이 '선생님께서 가신다'라고 하지 않고, '홍길동이 간다'라고 하거나, '담임이 간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실판단입니까 가치판단입니까? 우리가 일상 언어에서 존칭과 비칭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미 사실판단이 사실판단만일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이것이 서양의 언어나 철학과 다른 점입니다. 퇴율 등은 이런 점을 철학적으로 이론화하고자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지요?

그리고 율곡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엄밀히 나누는 것도 곤란하고, 또 지각판단과 情을 선후로 나눈 것도 위의 예에서처럼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치판단 자체가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논의를 하나 더 한다면, 동양윤리학 시간에 동양철학의 동기는 '어떻게'라고 말한 것을 상기해보세요. 이 문제와 유의미하게 연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 더, 서양에서 사실판단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그들의 철학 동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즉 사실판단은 개념화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개념화하지 않고 단지 보이고 들리는 것 자체가 나에게 주어진 현실상황인 것입니다.
------------------------

한번 더 생각해 보고 답변이 미흡하면 다시 질문해 주기 바랍니다. 질문의 요점을 파악하여 핵심적으로 답변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늘어 놓은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해준 학생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토록 질문을 하도록 권유하셨던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질문이야 말로 학생과 선생이 함께 성장하는 지름길이고, 학문을 빈틈없이 완성해가는 유일한 길인 것을 이제야 조금 느낄 것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그토록 질문에 목말라 하시면서 내게 질문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항상 야속하게만 여기면서 질문으로 선생님의 학문을 도와드리지 못했으니 나는 선생님의 죄인임을 이제사 알겠습니다. 학문은 끝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고 넓습니다. 우리 모두 넓고 깊은 학문의 바다를 헤쳐 나갑시다.

학생의 궁금증이 점점 더 커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