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義에 대한 질문입니다(임은지)
이름: 晴野
2007/3/22(목)
Re..교수님 義에 대한 질문입니다  
좋은 질문을 많이 올려 줘서 고맙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리학적으로 말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면 은지 학생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인과 의를 연결하고 있고, 의는 인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강의 시간에 이미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의 시간에 대강만을 말하고 자세히 하지 못하다 보니, 왜 심을 제재/절제하는지에 대해서 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심이 스스로 절제하는 것은 외부 상황 혹은 대상에 따라서 거기에 알맞게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조절/절제는 항상 주어진 상황 즉 일(사건)에 알맞게, 바꿔 말하면 옳게 처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일이 알맞게 잘 처리되는 것은 이 심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고(즉 통제력을 잃지 않고) 스스로 조절/절제하여 상황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정의' '옳은 것'이 됩니다. 즉 정의니 옳음이니 하는 것은 심이 스스로 자신을 절제하여 알맞게 잘 되어진 측면에 주목하여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의를 쉽게 말할 때는 정의라고만 하여도 괜찮습니다. 주자는 義를 "心之制, 事之宜"라고 정의하였는데, 심지제(절제)는 體이고, 사지의(정의, 옳음)는 用입니다. 그러므로 은지 학생이 절제와 정의를 포함관계로 보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용론을 이해한다면 포함관계 보다는 체용관계로 말하는 것이 더 성리학적입니다.
아래에 말한 捨生取義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참고로 義와 利의 관계는 그렇게 거리가 먼 것은 아닙니다. 성리학에서 '利는 義의 조화'라고 봅니다. 즉 옳은 것이 이로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군자는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고, 소인은 이익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확대되면 혹 소인은 옳지 않더라도 이익이 되는 일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요. 그러나 군자는 옳은 일만 하더라도 부수적으로 이익이 따라 옵니다. 그런 태도로 일관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혹 도둑질을 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차라리 망할 지언정 차마 도둑질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군자와 소인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목숨과 관계 되는 일이라면 捨生取義하지요. 이 경지에 이르면 군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나의 마음을 절제합니다. 살고 싶은 마음을 제재(制裁)하여 죽으러 갑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옳은 일입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고, 부족하면 다시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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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 義에 대한 질문입니다 - 임은지 ┼

│ 論語 里仁 편에 보면
│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기서는 義와 利가 대비되는 뜻으로 사용된것 같은데요~
│ 利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생각해보았을 때는 義가 옳은 것, 정의로운 것이라고만 생각되어집니다.
│ 그렇다면 오늘 수업시간에 다룬 사랑을 절제한다는 義의 개념은 큰 것이고 그 안에 정의를 뜻하는 義가 포함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제가 義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 (또한 군자는 生命을 버리고 義를 취한다고 하는데, 여기서의 義 또한 옳은 것으로만 해석됩니다.)

│ 부끄럽지만 義에 대해 다시 가르침을 주세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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