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와 중용에 대해서..(07이은주)
이름: 晴野
2009/3/11(수)
Re..권도와 중용에 대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진지한 토론도 멋집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여서 내가 잘 답변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만 답변하겠습니다.
중용이라 하여 나는 유학에서 말하는 중용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유학의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군요.
별 조건 없이 중용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동양의 중용이 대표할 것 같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안 그럴려나?
먼저 유학에서 말하는 중용을 좀 말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四書 중의 중용은 正道와 權道를 모두 포함합니다. 즉 권도만을 중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正道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도를 말하고, 권도는 대개 특수 상황에서 특수한 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권도는 가치면에서 정도와 동일한 것으로 보며, 부족한 점이 있는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즉 위급한 상황에서 형수의 손을 잡아 구조하는 것은 조금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스--의 중용은 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설천적) 덕을 가지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형수의 손을 잡아야 되는냐 말아야 되느냐의 문제가 대두되지 않는 것같습니다. 물론 좀더 깊이 말하다 보면 다소 그런 문제가 결부되기는 하겠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같습니다. 여기서는 물에 빠진 형수를 구조하기 위해 용기를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요. 비겁한 사람은 처음부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만용을 부리는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안고 나오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권도는 처음부터 비겁한 자와 만용을 부리는 자는 제외하고, 용기 있는 자만을 대상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구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방법인가를 묻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기준은 나도 살고 형수도 사는 방법, 그러면서도 예의를 지켜서, 형수가 기분 나쁘지 않은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道로는 곤란하다면 부득이 권도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권도는 실제로 행동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서는 권도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중용]이라는 책에서는 중용을 실천하기는 칼날을 밟는 것보다고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행동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힘들겠지요.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고, 그것을 계발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나 맹자가 말하는 것들은 공부없이 즉각적으로 아는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노력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단지 맹자가 말한 양지가 있는데, 이것은 가능성을 말한 것이지 이 양지가 작용하면 노력없이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소에도 연구하고 일이 앞에 닥쳐서도 연구해야 도리를 압니다. 평소에 공부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공부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은주학생이 말한 것이 더 나은 것같습니다. 내 답변을 참조하여 주장을 강화하기 바랍니다. 친구와 더 토론하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흡하면 다시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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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도와 중용에 대해서.. - 07이은주 ┼
│ 교수님! 안녕하세요?
│ 요즈음 윤리학에 관한 스터디를 하면서 각 지문에 문제를 내고 있습니다.

│ 그 중에서 '권도'에 대해 이번에 잠깐 다루게 되었는데요."
│ "형수가 물에 떠내려 갈때 형수의 손을 잡는 것은 권도다" 라고 하여 중용과 비슷한 면이 있으니 주장을 강화하라는 문제였습니다.

│ 이번에 스터디 4명하는데요 그 중3명은 똑같이 중용=권도라고 하였으나 제 생각에는 좀 달랐습니다.

│ 친구의 답은요
│ "유교적 가치기준을 특수한 상황에 의거해 융통성있게 옮겨 놓늗나. 형수가 물에 빠졌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 기준을 조절 없이 적용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도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맹자의 시중지도와 맞물리게 된다."
│ "이 권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 경우에 따른 타당한 행위가 중용이라 할 수 있는데, 평소에 형수의 손을 잡는 것은 중용이라 할 수 없지만 위의 지문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손을 잡는 것은 적절한 중용의 발현이다."

│ 입니다.
│ 물론 서양=동양을 같게 본다는 것에 저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 "  맹자는 ‘권도’라는 것을 말하였다. 권도란 무엇인가? 正道가 아닌 權道로서 상황을 저울질하여 그 중간의 도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규정짓지 않는 동양철학의 특징 또한 보이고 있다.
│   동양과 서양의 입장을 이렇게 규정짓는 것은 옳지 않으나 따져보자면, 동양의 철학은 절박함에서부터 시작한다. 또한 동양의 도는 時中之道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만약 형수를 고정된 도로 물에서 떠내려 가게 놔둔다면, 이는 생명을 잃는 일이다. 이러한 절박감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손을 내밀어 형수를 돕는다면 이는 형수의 손을 잡는 것은 옳지 못하나 정도일 것이다. 이는 시중의 道로서 그 당시의 상황을 옳고/그름으로 나누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구절의 다음장을 보면 권도를 조장하는게 아니라, 정도로 안될 때에 이를 행하는 것이다.
│   중용의 도와 무슨 차이가 있나? 물론 중간의 도, 저울질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의 덕을 강조하였고, 실천의 덕으로 손꼽은 것이 바로 중용이다. 중용은 그러니까 실천을 하기 위한 필수덕목인 것이다.
│   이는 이성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며, 또한 이성을 뛰어넘어 나중엔 직각적으로 행하게 되는 도를 터득함을 권장하고 있다.
│   이와 같이 직각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무엇을 하든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말하는 권도와 이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


│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권도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 그리고 또한, 맹자도 권도를 '공부했던 자만이 자연히 알게된다.'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았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을 알고싶습니다.
│ 이에 비교하여 내내 의문시했던 내용을 풀고자합니다.

│ 교수님 꽃샘추위인데 감기조심하시고요 !
│ 총엠티 가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따뜻하게 잤어요.
┼ 좋은하루보내세요~♡ ┼



210.125.95.125 이은주: 교수님~ 답변 감사합니다 ^^! 권도도 중용에 포함된다는 것과 그에 대한 경계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궁금증이 어느정도 풀렸습니다. 더 논의해볼게요! 감사합니다^^  -[03/13-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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