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성리설의 체계적 이해"를 읽고 질문 남깁니다.(김민지)
이름: 晴野
2021/4/10(토)
Re.."퇴계 성리설의 체계적 이해"를 읽고 질문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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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 성리설의 체계적 이해"를 읽고 질문 남깁니다. - 김민지 ┼
│ 안녕하세요, 교수님! 한국윤리사상을 공부하며 '퇴계 성리설의 체계적 이해' 논문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을 남깁니다!

│ 1. 'Ⅱ- 퇴계의 이기상수설' 에서 '순수한 기를 인정하지 않는 주자의 견해와 일치한다.'와, '기와 결합되지 않은 순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퇴계는 순수한 기도 인정하지 않고 순수한 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기상수설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퇴계의 '이기상수설'을 읽으니 '이기불상리'가 떠올랐습니다. 리와 기는 서로 의존하며 돕는 관계인 '이기상수설'과, 리와 기는 서로 분리 될 수 없다 라는 '이기불상리'가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퇴계는 형이상적인 리와 형이하적인 기는 서로 같지 않다고 보는 것처럼, 리와 기는 섞일 수 없다는 이기불상잡의 관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퇴계의 이기상수설을 이기불상리와 유사한 것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요?
│ 퇴계의 이론은 이기불상잡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기상수설의 내용이 이기불상리와도 의미가 통하는 것 같아 퇴계의 주장을 명확히 알고자 질문을 남깁니다.
답: 리기불상리와 불상잡은 각각 리와 기의 독립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그 관계가 서로 밀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퇴계는 리선기후를 인정하지 않는 등 리기의 독립적인 측면을 더 부정하는 면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미세한 차이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같아 보입니다.


│ 2. '주자는 형기지사와 성명지정을 지각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형기, 성명보다 사, 정을 더 중시하며, 행동으로 나아갈 때는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적용하여 인심이면서 동시에 도심이 될 수 있다.' 에서 인심이면서 동시에 도심이 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인심이면서 동시에 도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나의 육체가 목이 말라 물이 먹고 싶다고 느끼는 것을 나의 육체에서 유래한 것이 때문에 인심이라고 볼 수 있고, 또한 물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경지에 있을 때 죽음은 악한 것이기 때문에 나의 생명을 위해 물을 마셔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도리인 도심으로 볼 수 있을까요? 주자의 입장에서 인심이면서 동시에 도심이 되는 것이 어떤 경우인지 궁금합니다.
답: 그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 내 입맛에 맞는 것을 먹은 것은 인심입니다. 그 때 도리나 규범 등을 어기지 않고 먹으면 도심이 되고 굳이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겠다면서 도리나 규범 등을 어기면 도심이 되지 못하고 악이 되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먹고 싶은 것은 인심이지만 훔쳐 먹는 것은 악한 인심이 되고 자기 것을 먹으면 도심이 되는 것입니다. 또 물을 먹으면 살고 먹지 못하면 죽을 지경인데 자기의 물은 없고 남의 물만 있다면 훔쳐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죽어야 하는가? 그 상황에 따라 도리를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훔쳐 먹고 사는 것이 도리인가 아니면 그대로 죽는 것이 도리인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도리를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극한 상황을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일반적으로는 도리에 맞게 인심을 충족할 수 있는데 자기 욕심 때문에 그 도리를 어기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3. 위의 인심도심 내용을 주자와 퇴계와 비교하여, 주자는 형기와 성명을 지각판단의 기준으로 보아 지각판단의 기준이 형기이면 인심, 성명이면 도심으로 보았고, 퇴계는 형기와 성명을 지각판단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아 형기가 원인 되면 인심, 성명이 원인이 되면 도심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각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말과 지각판단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는 말이, 즉 '기준'이 된다는 것과 '원인'이 된다는 것이 명확하게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만약, '나의 육체가 목이 말라서 물이 마시고 싶다.' 라는 것을 주자의 관점에서 보면 물이 마시고 싶다고 판단한 것이 육체와 도리 중 육체이기 때문에 인심이 되는 것이고, 퇴계의 관점에서 보면 육체의 욕구 중 물이 마시고 싶은 욕구에 의해 물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인심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인가요? 육체와 도리가 지각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주자의 관점은 이해가 어느 정도 가는 것 같은데, 지각판단이 발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퇴계의 관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같은 예시를 적용하였을 때, 주자와 퇴계 각각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인심과 도심을 나누는 방법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 먼저 주자의 관점으로 보면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자기 입맛에 맞는 맛있는 것을 먹으려는 것은 인심이고 먹어야 되니 자기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 도심이 됩니다. 자리를 양보하더라도 도리이니까 하는 것이면 도심이 되고 명예욕 때문에 양보하려고 하면 인심이 됩니다. 주자의 관점에서 보면 옷을 입는 것은 자기 육체를 위한 것이지만 멋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심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 유지를 위한 것이면 도심이 됩니다. 반면에 퇴계 설로 하면 그런 것이 자세히 구분 되지 않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먹고 입는 것은 모두 인심이 되고 도리를 위한 것은 도심이 됩니다. 도심 상위일신지주를 하려면 혼륜설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편한 점이 될 수 있습니다.


│ 4. 퇴계가 사칠분별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심도심과 사단칠정의 연결을 혼륜설과 분별설 두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분별설은 도심은 사단과 연결되고, 인심은 칠정과 연결되는 것은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혼륜설의 관점에서 보면, ‘본연지성-도심-칠정’을 연결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도심은 혼륜설한 것'이라는 의미는 원래 인심이었던 것이 도심으로 수렴한 후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본연지성과 도심을 연결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도심이 칠정과 연결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퇴계는 리귀기천을 말하며, 리는 귀하고 기는 천한 것, 사단은 귀하고 칠정은 천한 것으로 보았는데, 어떻게 선한 도심을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칠정과 연결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도심-칠정'의 연결 관계를 도심 전체와 칠정 전체를 연결한다고 보기 보다는, 칠정 중에서 선한 칠정의 부분만 도심과 연결 된다고 보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선한 칠정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는 칠정인 동시에 사단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일까요.. 또,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퇴계도 율곡과 마찬가지로 칠정 안에 사단이 포함된다고 본 것인가요? '본연지성-도심-칠정'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 혼륜설로 말하는 칠정은 사단을 포함합니다. 즉 그 때의 칠정은 정 전체를 의미하고 율곡과 같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 논문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자꾸 도심은 사단과 연결하려하고, 인심은 칠정으로만 연결하려 하는 것 같아 혼륜설의 주장이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적으로 보면 모두 기질지성이고 기발이지만, 이상적으로 보면 모두 본연지성이고 리발인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려 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본연지성, 기질지성, 도심, 인심, 사단, 칠정 모두를 반으로 구분하지 말고 관점의 차이에 따라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답: 먼저 주자와 퇴계의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개념만 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예를 들어 생각하면 좋습니다. 내가 위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으니 그것을 가지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질문하세요.
┼ 아직 질문에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답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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