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정연 2020/10/16(금) | |
梁惠王章句上 07 7장_2 p49 道는 말함이다. 동자(동중서)가 말하기를 “중이의 문하에는 오척동자들도 오패를 칭하기를 부끄러워한 것은 그 속임수와 무력을 앞세우고 인의를 뒤로 하였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또한 이 뜻이다. 以는 已와 통용하니, 無已는 반드시 그것을 말하고자 하여 그만두지 않는 것이다. 왕은 천하에 왕 노릇하는 도를 말한다. -> 사실 해당 문단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道는 말함이다..? 道랑 말하는 것이랑 무슨 연관이 있고 道를 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오척동자들이 오패를 칭하기 부끄러워했다는 것은 오척이나 되는 어린 아이들조차도 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럽게(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오패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以와 已가 통용한다는 것과, 無已의 의미 역시 함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장_4 p49-50 曰若寡人者도 可以保民乎哉잇가 曰可하니이다 曰何由로 知吾可也잇고 曰臣聞之胡齕하니 曰王坐 於堂上이어시늘 有牽牛而過堂下者러니 王見之하시고 曰牛何之오 對曰 將以釁鍾이니이다 王曰 舍 之하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하노라 對曰 然則廢釁鍾與잇가 曰何可廢也리오 以羊易之 라하니 不識케이다 有諸잇가 -> 소보다 감정이 덜한 양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답변을 봤습니다. 친소(즉 멀고 가까움 등)를 기준으로 별애를 이야기하는 유교의 사상이 이와 연결된다고 보면 될까요? 소가 양보다는 바로 앞에 가까이 있는 존재이니까요. ->교수님께선 부득이 사랑하는 마음(인한 마음)을 절제하고 먹을만큼의 최소한만 잡아먹는 것이 바로 소나 양 등에 대한 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축들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 분뇨와 뒤섞인 채로 가둬두며 대량생산만을 꾀하는 것은 가축들에 대한 의가 아니라고 보면 될까요? 그리고 맹자의 인, 의와 관련하여 추가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 맹자는 역성혁명에 대해서 인보다는 의로 판단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다른 대상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그러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가령 임금에 대한 충에 있어서, 사랑해서(인) 호위를 해야 한다기보다는 임금을 호위하는 것이 옳은 것(의)이기에 해야한다고 하셨죠. 비슷한 맥락에서, 친구를 대할 때 역시 인보다는 (그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려면) 의로서 먼저 생각하고 조언해야할 것 같습니다. 맞나요? 그런데 부모->자식, 왕->백성은 비슷한 관계로, 인한 마음을 가지고 대상을 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맹자는 대상에 따라 인과 의의 중점이 달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그리고 이것이 유교 전체에 적용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Re..梁惠王章句上 07(晴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