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시우 2020/12/5(토) | |
이루장구상 300p에서 스스로 몸을 해치는 자와 버리는 자 모두 점점 연마를 한다면 다시 인의를 회복할 수 있으며, 그 근본이 선이 된다고 볼 수 있나요? 또, 다른 학우분들의 질의응답을 보고 자포와 자기를 한 사람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다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301p의 '자포와 자기를 하는 사람은 성인과 더불어 거처하더라도 교화하여 들어갈 수 없다'는 구절은 결국 남이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갈고 닦아 인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루장구상 12] 몸을 성실히 하는 것에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학문이 필요하고, 학문을 통해 지식을 지극히 하여 선을 밝게 알아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몸을 성실히 해봤자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는데, 이를 우리가 학교에서 '도덕'이라는 교과목을 배우는 이유라고 볼 수 있나요? [이루장구상 17] 1. 다른 학우분들의 질의응답을 통해 맹자가 천하를 손으로써 구원하는 것을 경계한 이유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권도를 허용했다가 자칫 인하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왕이 인으로 나라를 다스려 부국강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맹자와 같이 인하다고 알려진 인물이 천하를 구원하는 것 또한 그닥 옳다고 보지 못한 것인가요? 2. '曰 今天下溺矣어늘 夫子之不援은 何也잇고'에서 夫子는 맹자를 가리킨 것이 맞나요? [이루장구상 19] 이번 장을 공부하면서 논어집주에서 '사람이 犬馬를 기름에도 모두 음식으로 길러줌이 있으니, 만약 그 어버이를 봉양하기만 하고 공경함이 지극하지 않다면 견마를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배웠던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이와 연결해봤을때, 曾元이 봉양하는 방식은 犬馬를 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孝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曾子처럼 뜻을 봉양하는 것이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인 것인가요? 남은 기간동안 논맹문답에 올라온 글들을 참고하여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Re..이루장구상(晴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