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신독재 선생의 공손 (supil)

No,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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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獨齋先生의 恭遜

尹用男(誠信女大)
愼獨齋金集 선생의 辭侍講院贊善疏를 읽고 느낀 점이 있어 적어 보고자 한다. 이 上疏는 仁祖 24년(1647년), 선생 74세 때 올린 것이다. 이 上疏를 올리게 된 經緯는 다음과 같다.
병술년(1646년) 여름에 좌의정 金尙憲이 箚子를 올려 아뢰기를,
"世子가 훌륭한 스승을 얻기를 만 백성이 목을 늘이고 苦待합니다. 현재 世子侍講院의 관료 중에는 물론 名士가 많지만 다시 널리 人材를 구하소서. 행동이 方正하고 학문이 篤實하여 名聲과 事實이 이미 드러난 사람은 科目(文科, 武科 등)에 구애받지 말고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 書筵에 참여하게 하소서."(愼獨齋全書, 卷15, 年譜)
하였는데, 임금이 이 建議를 받아들여 吏曹에 맡겨 시행하도록 하였다. 吏曹에서는 贊善, 翊善, 諮議 등의 관직을 特設하고 장차 선생을 贊善으로 부르고자 하였으나, 3人을 薦擧하게 되어 있는 당시 제도대로 함께 薦擧할 만한 다른 人材를 찾지 못하여 즉시 시행하지 못하였는데, 정해년(1647) 4월에 이르러 임금은 特命으로 선생을 그 자리에 임명하였다.
이에 선생은 그해 5월에 '임금이 부른다고 하여 즉시 달려가는 것만이 恭遜한 것은 아니다(不以趨走爲恭).'라고 하면서 辭職疏를 올렸다. 선생은 疏에서 아뢰기를,
"非常한 방법으로 人材를 選任하는 것은 진실로 非常한 사람을 優待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에 맞는 사람이 아니면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이 모두 잘못이니,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臣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오직 治亂의 根源은 나라의 根本에 매어 있고, 나라의 근본을 배양하는 것은 오로지 人材를 얻는데 있습니다. 지금 政府에서 특별히 관직을 새로 만들고 科目에 구애받지 않고 人材를 구하려는 것은 참으로 意圖하는 바가 있는 것인데, 臣과 같이 천박한 사람이 어찌 감히 그 選任에 대하여 曰可曰否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臣은 實狀과 다른 虛名으로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한 지 여러 해입니다. 臣이 어찌 감히 다시 은혜와 영화를 탐하여 태평한 시대를 크게 속이겠습니까."(愼獨齋全書, 卷3, 辭侍講院贊善疏)
라고 하였다. 이것은 처음 올린 상소인데 이때는 허락을 받지 못하였고, 두 번째 辭職疏를 올린 다음에 허락을 받았다.
묻건대, 소위 三權을 장악하고 있다는 절대권력의 소유자인 임금의 부름에 즉시 달려가는 것이 恭遜이 아니면 무엇이 恭遜인가? 오늘날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恭遜은 '고분고분히 順從하는 것'이다. 그러나 愼獨齋先生이 생각하는 恭遜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자리에 임명을 받으면 그 직책이 자기의 分數에 맞는가, 義理上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등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分數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그 직책에 해당하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가? 지혜나 經綸 등 자신의 역량으로 그를 감당할 만한가? 임명하는 데 규칙이나 서열이 있다면 그에 타당한가? 또 義理의 측면을 본다면, 나보다 더 훌륭한 適任者가 있는데 偶然한 誤判이나 사사로운 因緣 때문에 나를 임명하는 것은 아닌가?
이와 같이 分數와 義理에 맞는 자리가 아니면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最適任者가 아닌데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자신만이 잘못이 아니라 그를 임명한 임금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가 下位職이 아니라 高位職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은 당연하다. 즉 위에서 임금이 經國大典 등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贊善의 자리를 新設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데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더더욱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부름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이 赴任하지 않는 것이 위로는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길이고, 아래로는 자신이 分數와 義理를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옛날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장관 등을 임명하였는데 자기가 적임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양하였다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 등에서는 사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보다 더 좋은 수입이 보장되는 일터가 있거나 여론이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愼獨齋는 상소문에서 여론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을 學識과 德行을 겸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分數와 義理를 판단하건대 적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愼獨齋 선생이 생각하는 공손은 무엇일까. 임금의 말이 곧 법으로 통하는 시대에 임금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은 抗命이요 犯法이다. 그런데 愼獨齋 선생은 이것이 항명이나 범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愼獨齋 선생의 항명과 범법의 기준은 무엇일까. 임금의 명령보다 높은 상위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分數와 義理를 포괄하는 '道理'이다. 道理에 맞는 명령이면 따르고 도리에 합당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즉 도리에 합당한 명령에만 순종하는 것이 恭遜이다. 따라서 道理에 맞지 않는 命令에는 順從하지 않아도 不恭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명령이 도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가. 愼獨齋 선생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다. 즉 임금이 아무리 도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愼獨齋 선생 자신이 판단하기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 명령에 즉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적법하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조선조 500년을 유지해온 힘이다. 임금의 권위와 권력에 합법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것은 관리임명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임금의 명령에 대하여 그를 시행하는 관리는 그 명령을 도리에 비춰 봐서 反論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그러므로 임금은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 없고, 반드시 도리에 합당한 것만을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반론은 왜 권리이면서 의무인가. 만일 잘못된 명령에 따랐다가 역사의 죄인이 되거나 여론의 지탄의 대상이 되면 안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런 억울한 죄인이 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또 사랑하는 임금 역시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도 안되고, 여론의 지탄을 받아서도 안된다. 나아가 사랑하는 백성도 잘못된 명령의 시행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임금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이다.
愼獨齋 선생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는 법치주의 사회에 사니, 公組織이나 私組織을 막론하고 법률이나 규칙에 맞는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恭遜이고,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고분고분히 따르는 것은 不恭이며 아첨이며 탐욕이다.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공손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어른의 말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道理나 法에 맞는 말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法에 맞는 어른의 말에만 따르는 공손한 젊은이가 많은 세상, 그건 살 맛 나는 세상일 것이다.
遯巖會報第8號(1994년 8월 20일) 3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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