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특강 야외수업(윤촌지 94년 1학기)

1994. 5. 13. A.M 11:10∼12:30

장소: 어학관 옆 잔디밭

기록: 김수연, 오혜영

정리: 최우정

야!!! 야외수업이다!!!

우리는 너무나 신이 났다. 그것도 보통 야외수업이 아닌, 과자와 김밥 등 먹을 것이 풍부한 야외수업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들어 갑자기 교수님께서 너무나도 잘 해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이유는 왜일까???

잔디밭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준비된 것을 맛있게 먹고난 후, 우리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교수님:동양철학에서 생각하는 방법,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봅시다.

"잔디가 이 세상에 왜, 무슨 이유로 태어났는가?"

모든 자연과학적 지식과 상식을 동원해서 쉽게 생각해봐요. 원시시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방연주:2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창조주가 만들었다는 원리를 들 수 있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진화의 원리를 들 수 있지 않을까요?

교수님:창조주가 만들었어도 이유가 있지 않았겠는가?

방연주:풀은요, 동물들이 뜯어 먹을 수도 있고, 인간이 앉을 수도 있고, 또, 집을 지어 살 수도 있잖아요.

교수님:그것은 인간위주의 생각이다. 다른 측면도 있으니, 인간의 문제는 제외하고 전체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사실 동물들에게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다. 소, 돼지같은 동물들은 잔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잔디를 만들었나?

김영실:뭐든지 자기 할 일이 있어서 태어나지 않았겠어요?

교수님: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방연주:좀 주제에서 벗어나는 질문인데요, 저는 옛날에 바퀴벌레를 잡으면서 재는 왜 태어났을까. 더럽고 쓸모도 없는데 하며 생각해 본 적이 있었어요.

교수님:그래, 바로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는거야. 단지 바퀴벌레를 잔디로 바꿨을 뿐이야. 다른 사람 더 할 얘기 없나? 잔디도 탄소동화작용 같은 거 하나?

방연주:그럼요, 녹색을 띠고있으니까요.

교수님:그러면 적어도 녹색식물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오직 잔디만의 특성이 있겠지.

방연주:잔디가 있으면 항상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말 밖에 없어서 생각하기 좀 어렵네요.

이정선:잔디가 있으면 흙이 파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비가 오거나 바 람이 불거나 할 때 산사태를 방지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잔디로 인해 살아가는 작은 벌레들에게 서식처가 되잖아요.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는 것 같아요.

교수님:창조주가 만들었을 때 인간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는가?

강유미: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잔디밭에서 야외수업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그 질문이 생각나신 거예요?

교수님:나는 오래 전부터 잔디 뿐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항상 이렇게 생각을 했었지. 잔디 말고 다른 것으로 바꾸면 더 쉬울 것 같아? 요약을 해 보면 첫째, 인간위주로, 둘째, 인간 이외의 것 위주로 생각해 볼 수 있단 말이야. 그럼, 인간위주로 돌아와서 창조주가 잔디를 만들 때 깔고 앉으라고 만들었을까? 만약 창조주가 인간만을 위해 잔디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할 때, 우리가 잔디밭에서 노는 것이 타당한가? 잔디가 기뻐할 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조정래:잔디를 깔고 앉거나 밟으면 죽어요?

교수님:그걸 왜 나한테 묻나?

방연주:잔디는 밟아주어야 잔디에게 도움이 된대요. 하지만 너무 많이 밟 으면 파손될 염려가 있지만요...

교수님:지금 여기에 잔디가 채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잡초가 우거져도 될텐데...

김수연:네. 미관상이요.

교수님:미관상이면 장미도 있고 멋있는 풀들도 있잖은가? 또 다른 생각을 해봐.

정선영:다른 풀들은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해요.

오수진:경제적으로 저렴해서요. 그리고 녹색이라 피로하지도 않고, 아늑하고 안정감 있잖아요.

최우정:잔디는 대개 넓게 펼쳐져 있잖아요. 그러니깐 사람들에게 바다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육지의 바다라고나 할까요?. 바다같이 넓고 탁 트인 것 같아서 잔디를 보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수 있잖아요.

이정선:잔디가 생명력이 강하잖아요. 그러니까 쉽게 죽지 않아 실용적이잖아요.

조정래:습관적으로 심는 것 같아요. 필요해서 심었는데 그것을 습관적으로 계속 심는게 아닐까요?

교수님:그건 좀 벗어난 생각이지. 그러니까 왜 처음에 심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봐. 왜 잔디를 심는 습관이 생겼을까? 인간이 잔디를 선택했을 때 잔디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선영:잔디는 기뻐할 것 같아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서요.

방연주:[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가 생각 나는데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 소년과 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나무는 그 소년에게 헌신적이라 할만큼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어요. 소년이 늙어서 힘이 없을때 나무는 의자가 되어 주었지요. 편히 쉬라고요.

신이 만들었건 인간이 만들었건 각자의 상대로부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잔디와 다른 생물체와의 즐거움을 생각해 볼 수 있죠. 하지만 지나치게 잔디를 짓밟으면 싫어 할 것 같아요. 친구 사이에도 그렇잖아요. 물론 [아낌 없이 주는 나무]에서는 작가가 주는 MESSAGE가 있으니까 나무가 인간에게 헌신하지만요, 보통 생각한다면...

교수님:애완견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보자.

방연주:어렸을때 개가 우는 충격적인 것을 보았어요. 개가 어쩔수 없이 주인을 따르는 것이 불행해 보였어요.

교수님:개를 대변해서 얘기해 볼 사람 없어? 개 좋아하는 사람들... 빨리 얘기 해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개를 끌고 다니는게 개한테 좋은 거라면 계속 해야지. 하지만 싫어하는 경우라면 계속 해야하는지 어떤지... 인간의 문제로 환치시켜보면 인격적인 대우와 비인격적인 대우의 기준은 무엇이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무시하는 것이 되고 어떤 경우에 대우하는 것이 되는가? 아무개더러 청소하라고 시키면 시키니까 하는거지 기뻐하는 사람은 없어. 그럼 잔디도 선택받았다고 기뻐할게 없지.

조정래:사람,개,잔디를 동일시 하시는 거예요?

교수님:같은 측면이 있다는 거지, 동일하다는게 아니라.

김영실:잔디는 자신이 밟히고 있는지 알지도 못해요.

교수님:그렇다면 무생물은 함부로 다뤄도 되는가? 잔디를 지배한다면 어디까지 대우해 주어야 하는가? 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는데, 그럼 무생물인 책상은 때려부숴도 되는가? 그런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단 말이야. 잔디가 아느냐 모르느냐가 위주가 아니라 잔디가 선택된 이유하고 이것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대해 집약해 볼 수 있겠지. 상대가 알면 대우하고 모르면 탄압해도 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 것 같아?

방연주:인간이 다른 것들을 지배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인간중심적으로 행동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잔디라면 슬퍼할 것 같아요.

정선영:잔디도 느낌이 있고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책에서 봤는데요, 꽃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인대요.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꽃은 잘 자라고요.

방연주:감정을 가지고 그러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아요. 최소한 책상같은 경우 저희들에게 주는게 있잖아요. 불교에서는 不殺生이라 했는대요.. 그리고 아까 상대의 즐거움같이, 서로에게 존재함으로써 즐거움이 있는 것같아요. 바퀴벌레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만, 잔디를 태우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박현진:무생물이 인격이 있어서 잘 해준다는 것보다 책상을 부수거나 하면 우리가 손해를 보니까 안 좋잖아요.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방연주:이 세상 모든 동식물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되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개에게 옷 입히고.. 개들은 자유를 원하는데 그것이 진짜 개를 위한 것인지요... 생태계를 유지하거나 뭐 그런것도 인간들이 더 오래 살기위해서 하는게 아닌지요...

교수님:이런 측면을 생각해 보자. 아까 요점은 생물은 의식이 있으니까 그에 맞게 대해 주자는 거였지? 물은 생물이야? 무생물이야?

방연주:무생물이요.

교수님:흙은?

방연주:흙 그 자체는 무생물이죠. 물론 흙이 숨을 쉰다고는 하지만요.

교수님:토양오염, 수질오염의 문제를 살펴보면 그들도 어떤 면에서는 자각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정선영:자기의 모양을 보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태를 갖출 정도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요.

박현진:무생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보존돼요.

방연주:모든 동식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보존되죠. 생태계의 보존, 환경문제등은 모두 인간의 의지와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김영실:아까 계속 무생물도 의식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깐 그에 맞게 대해주어야 한다고요.. 그렇담 우리는 밥을 어떻게 먹죠? 사실 벼는 우리가 먹으려고 재배한 거니까 쌀을 먹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봐요.

교수님:그럼 산의 밤이나 약초같은 거는?

조정래:그럼 뭘 먹고 살죠?

방연주: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순환한다고 봐요. 그러므로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교수님:또 인간 위주로 돌아왔구나. 먹이연쇄나 순환식의 발상이라면 다른 무생물도 마찮가지다. 무엇을 기준으로 상대를 취할 것인가?

오수진:예를 들자면 개고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정당하지만요, 외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잖아요. 그런 것은 관습의 차이라고 봐요. 생명유지를 위한 건데 정당하지 않아요?

교수님:약육강식을 관습의 차이라고? 지금 결과적으로 볼 때 생물은 잡아먹어도 된다는 것으로 얘기가 바뀌었는데, 그럼 왜 그렇게 됐는가? 아까 뭘 먹고 사느냐는 문제에서부터 이렇게 돌아서게 되었는데, 그것이 중요한 문제야. 그럼 어디까지가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는 한계의 기준인가? 이것이 윤리의 문제이다.

방연주:처음 접하는 문제예요.

김영실:이 토론을 통해서 교수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무엇을 주시려는 겁니까?

교수님:서양철학은 인간위주로 문제를 삼고, 동양철학은 인간과 다른 동식물이 같은 계열선상에 있다고 보는 거야. 생물과 무생물의 기준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잔디가 왜 태어났는가 하는 문제는 理氣論에서의 이(理)때문에 태어났다고 얘기할 수 있지. 즉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의 삶과 그 조화를 위해 잔디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낸 것이지. 그 만든 자는 天이라고 하는데 天은 우주와 그 안의 만물을 통칭하는 것이지.

또 잔디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지.하나는 사람들처럼 잔디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흙이나 수분 등처럼 잔디를 통해서 자기의 존재이유를 확인받는 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다른 예를 든다면 나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일하고, 또 나를 위해서 목이 터지도록 노래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어줌으로써 그의 존재이유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지. 이렇게 얽히고설킨 속에서 만물은 살아가는 거야.

인간이 왜 잔디를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그곳에 맞는 가치를 잔디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이렇게 선택된 잔디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아까 선영이가 말한 것처럼 기뻐할 거야. 때로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바쳐서. 그러므로 우리가 잔디를 밟는 것은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정당하지. 그렇다고 해서 가수를 하루 종일 노래시킬 수 없는 것처럼 잔디를 마구 밟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지.

또 바퀴벌레는 연주가 말한 것처럼 정말 쓸모 없는 것일까. 이 세상에 과연 쓸모없는 존재가 있는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지금 토론한 거를 잊지 말라구... 4년동안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풀릴테니...

후기: 여러분들은 적어도 12년여를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밤낮없이 읽고 외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한학기도 안되어서 그렇게도 힘들고 지루한가? 그러나 이렇게 하찮고 지루한 작업을 선행시키지 않으면 동양사상에 대한 바른 이해는 불가능한 것을…….

동양사상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내 줄 여유는 없는가?

오늘의 주제가 조금은 익숙치 않은 것이긴 하였지만 이번 기회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오늘의 야외수업은 참 성공적이였던것 같다. 앞으로도 야외수업을 많이 많이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