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평온으로
윤용남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
나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
나는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조물주(造物主)가 나한테 시킬 일이 있어서 나의 부모님을 빌려 이 세상에 나오게 하였을 뿐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고, 부모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위로 끝까지 올라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를 어디 쓸 데가 있어서 나를 만든 것이지, 나를 위해서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나에게 일을 시키려고 나를 만든 것이지 혼자 재미있게 놀라고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예를 들면 조물주가 벌을 만든 이유는 꽃의 가루받이[受粉]를 도울 자가 필요해서 벌에게 그런 일을 시키려고 만든 것이다.
이는 인공물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화점이나 생활용품점 등에 가면 이름도 알 수 없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물건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그들의 조물주인 사람이 어디엔가 쓸 일이 있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가 없다고 해서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다.
내 안의 갈등 원인은 무엇인가?
조물주가 나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나를 만들 때,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선설(性善說)이다. 그런데 일을 하려면 손발이 움직여야 하고, 손발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으면 그것을 소화하여 힘을 발휘하도록 오장육부가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육체가 건강하고 생기가 있으면 정신과 마음이 그 힘을 얻어 다시 내 육체에 일을 시킨다. 마음은 조물주로부터 받은 임무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한 편으로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조물주는 먹고 싶도록 식욕을 주었다. 이에 일하고 싶은 욕구를 잊고 식욕에 몰두하는 때도 있게 된다. 먹지 않고 일만 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조물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나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먹고 싶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일을 하고 나면 쉬기도 하고 잠도 자야 한다. 이에 조물주는 쉬고 싶고 자고 싶도록 수면욕도 주었다. 또 대를 이어가며 그 일을 담당하려면 종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남녀를 구분하였고, 그 남녀는 서로 호기심을 갖고 좋아하도록 성욕도 주었다. 또 이런 욕구를 채우기 수월하게 해주는 재물을 위한 재물욕,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을 위하여 명예욕도 주었다.
물론 이런 욕구들은 모두 조물주가 본래 설계한 것으로서 그런 욕구가 없다면 사람은 먹지도 않고 일하다가 죽었을 것이고, 종족은 멸종되었을 것이다.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로 사람들은 이렇게 건강과 종족을 잘 유지하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먼저 채우고 싶은 마음과 천명(天命)으로 주어진 일을 먼저 하고 싶은 마음이 대립한다. 이 두 마음이 내 안에서 갈등한다.
나 개인 안에서만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만물과 만물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존재가 살고 있는데,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벌과 꽃처럼 상생(相生)하며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상극(相剋)의 경우도 있다. 어느 한 존재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의 생명을 취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자연의 섭리이다. 이미 조물주가 그렇게 설계한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남을 돕는 일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잡아먹어야 한다. 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남을 돕는 일과 나의 육체 보존을 위한 이익이 서로 상충한다.
나라 안의 갈등 원인은 무엇인가?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설립하고 사원을 모으며,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회사에 들어간다. 서로의 요구가 일치하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개인의 내부 갈등은 여기에서도 이어진다. 일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먹고 자면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회사는 사원의 건강과 생활을 위하여 월급을 주고, 사원은 월급을 받아 생활하고 건강을 유지하여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유교사회에서는 이렇게 회사와 사원이 상생한다. 회사는 사원에게 월급을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사원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더 많이 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이익은 의리의 조화”라는 것이다.(利者, 義之和也. /易乾卦, 文言) 즉 회사는 일을 많이 시키고 월급을 조금 주면 안 되고, 사원은 일을 조금하고 월급을 많이 받으면 안 된다. 서로 억울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국가가 없을 때 이웃 부족이나 맹수들과 문제가 생겼다. 이에 자기 집안끼리 단결할 필요가 생겼고, 또 지도자도 필요하였다. 이에 지도자를 선발하여 그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 지도자는 구성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고, 그 집안사람들 또한 지도자를 위해 헌신하였다. 서로 돕고 보살피며 한 집안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집안이 점점 커져서 오늘날의 국가 형태가 되면서 그런 유대관계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기반한 사회가 점점 사랑은 옅어지고 의리와 법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의 일보다는 개인적 욕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커졌다.
그러다가 민주자본주의 국가로 바뀌면서 회사와 국가보다는 개인을 먼저 생각하고, 나의 할 일보다는 나의 행복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즉 개인이 회사나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줄어들고, 회사와 국가가 개인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은 늘어났다. 그러나 각자가 할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갈등은 폭발하고 표면화되었다. 이것이 이기주의이고 개인주의이다.
갈등을 넘어 평온으로...
유교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는 일이다. 유교사회에서는 음과 양, 밤과 낮처럼 서로 반대 입장을 갖더라도 너와 나, 우리가 한 곳을 바라보며 산다. 서로가 힘을 합쳐서 하나의 일을 완성한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일하고, 그 속에서 나의 육체를 보존하고 나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보답을 받는다. 나는 일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데 민주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와 달리 육체의 안일과 개인의 행복을 너무 중시한다. 급기야 회사는 거덜나고 나라가 흔들거릴 때까지 개인과 자기 편의 이익만 추구한다. 자신의 존재이유는 망각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공자는 말하였다. “이익에 의지하여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論語, 里仁12) 이익은 남과 공유하기 어렵다. 내가 이로우면 상대는 손해 보기 쉽다.
유가에 정좌(靜坐)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불교의 참선과 유사한데 화두를 갖지 않고 할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비우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익을 앞세우면 이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고 계속 계산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익일까? 저렇게 하는 게 더 이익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때 이익을 내려놓고 어느 것이 내 일인가, 무엇이 정당한 일인가를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순간에 일하고 싶은 욕구와 먹고 싶은 욕구가 극적으로 화해한다. 일한 만큼 먹고, 먹은 만큼 일한다. 그래도 나의 존재이유는 일하는 것이니, 일을 조금 더하면 좋지 않을까......
월간 불교 2023년 7월호(740호)
No, 87
갈등을 넘어 평온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