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통윤리 교육 지위 보장돼야

교과군 증감 동양사상 비중 약화 우려

고대만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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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래형 교육과정(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국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는 지난 7월 24일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을 발표했다.

주요골자는 다음과 같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현행 10년(고등학교 1학년)에서 9년(중학교 3학년)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과목별 20% 증감을 허용하는 수준에서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ㆍ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학년군을 도입해 시수가 적은 과목에 대해 학년별, 학기별, 분기별 집중이수를 가능하게 한다. 교과군을 도입해 ‘도덕’과 ‘사회’를 사회ㆍ도덕 교과군으로, ‘과학’과 ‘실과’를 과학ㆍ실과 교과군으로, ‘음악’과 ‘미술’을 예술 교과군으로 편제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강화와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자문회의는 학과군, 교과군의 도입을 통해 학생들의 과중한 학습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실상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사교육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학부모라면 누구나가 알겠지만 학생들의 과중한 학습부담이 도덕, 실과, 음악, 미술 등의 과목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다. 이 과목들 수행평가와 시험공부 때문에 국, 영, 수 공부 시간을 뺏길 수는 있겠다. 학습부담은 학업의 성패가 달린 국, 영, 수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도덕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도덕이 후순위로 밀리고, 도덕이 다른 교과에 더부살이하고, 도덕이 숨겨지고, 도덕이 괄호 속에서 갇혀지는 이 현실, 도덕이 푸대접받는 이 현실에 참담할 따름이다.

경영에서조차 윤리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윤리경영이 강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윤리관련 교과목이 개설되고 있는 이 마당에 도덕 과목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윤리학이 가장 오래된 학문이고, 한 나라의 품격이 시민들의 윤리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 속에서 시민들의 윤리의식 고양에 기여하는 도덕 교과는 정당한 지위를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동양철학(윤리학)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그 심오한 통찰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과정 속에서 응분의 대접을 받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제 미래형 교육과정에 따라 사회ㆍ도덕 교과군 체제로 운영되고 과목별 20% 증감 운영이 가능할 경우, 그러지 않아도 중요성에 비해 과소평가되어 있는 동양사상의 비중이 더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동양철학(윤리학)은 우리의 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인간 소외와 불안의 문제 그리고 생태계 위기, 전쟁과 폭력, 차별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좋은 전망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교육과정 속에 일정 부분을 차지하여 반드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양철학(윤리학)은 특히 그 포용성으로 인해 다종교사회, 다문화사회의 이질적 특성들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조화를 추구해 나감으로써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할 수 있다.

자연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와 상생을 추구한다는 점(그러기 때문에 현대의 환경윤리, 생태윤리의 든든한 이론적 기반이 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즉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 너와 내가 평등하다, 너와 내가 뿌리를 같이한다는 불이(不二)사상, 개체와 전체를 동시에 존중한다는 점, 존재 전체가 하나를 이루어서 흘러간다는 전일적 사고, 느림과 관조와 명상을 중시한다는 점 등이 현대의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동양철학(윤리학)의 강점이라 할 것이다.

사유는 그저 쉽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유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세계와는 다른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와 지속적으로 접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그 속에 들어 있는 심오한 이치를 깨우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