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신문 8월 1일자

‘미래형 교육과정’과 ‘영혼이 있는 인재’ 양성

  김 기 현 (전남대학교 교수)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회에서는 문화나 도덕을 논하기 어렵다.’ 싱가포르 정부의 초청을 받아 1년 또는 2년 간 연구를 수행하고 돌아온 중국인 원로 교수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소감을 말하였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구성원들이 경제적 가치를 제1의 가치로 여기며 경쟁에 여념이 없는 사회의 先頭走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싱가포르 정부와 집권층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잘 알기에 그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인문학 분야의 세계 석학들을 초빙하여 연구를 쌓게 하는 점이 가상하다고 교수들은 말했다.

구성원들이 ‘효율’을 중요시하고 눈에 보이는 가치(돈 되는 것)에 주력하는 사회에서는 문화도 예술도 도덕도 다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와 지도자들은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유교 교육을 강화하고 도덕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누구나 공통으로 이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국민기초공통과목을 1년 줄이고 과목도 10개 과목에서 7개 과목군으로 줄인다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글로벌 인재 양성, 창의력 신장 등에 초점을 두고 있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사교육비도 줄이려는 의도라고 한다.

한국 정신문화의 長江大河에 서서 이번 발표를 바라보는 우리는 미래의 교육과정이 영혼이 없는 도구적 인재를 양성하는 ‘죽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산’ 교육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기존의 교육과정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한발 삐끗하면 우리의 초중고가 문항 풀이만 잘하고 한국인으로서의 正體性은 흐린 학생들을 배출하는 학원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일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말하는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아직 3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미국 사람들이 ‘위대한 전통’의 교육 운운하는 것이나 우리가 보기에 때로는 별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을 金枝玉葉 다루듯이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웃음이 나올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미국 교육이 ‘영혼이 있는’ 미국인을 길러내려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수요와 여건에 따라 글로벌 시대에 맞는 유능한 인재, 창의적 인재가 나오게 되어 있는 교육과정에 싱가포르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모든 교육과정에서 도덕교육을 의무화하고 강화하는 이유 역시 싱가포르 국민이라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는 ‘영혼이 있는’ 싱가포르인을 길러내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공교육이 영어, 수학 등 도구과목 위주로 흐르게 되면, 언제든지 싱가포르를 떠날 수 있고 언제든지 싱가포르 국적을 버릴 수 있는 말 그대로 ‘글로벌’ 인재가 나오게 된다.

어떤 인간형을 길러낼 것이냐는 교육과정의 序論에 해당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은 ‘영혼이 없는’ 인간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새 교육과정이 도덕윤리 과목을 首科目으로 지정하고서 한국의 윤리전통 교육을 강화한다면 미래형 교육과정이 ‘영혼이 있는 인재’를 지향하고 있음이 명확해질 것이다.

짧은 역사,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전통을 강조하고 세워나가는 미국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한국은 깊고 오랜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만일 공교육에서 전통 윤리사상 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일 것이다.

독일의 석학 하버마스는 2주일 간의 訪韓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자리에서 한국불교의 도덕적 자원과 한국유교의 공동체 윤리 전통을 한국사회 현대화의 발판으로 삼으라고 충고하였다. 200년 넘은 기독교의 사회윤리도 이제 한국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을 현재와 연결하여 되새기는 가운데 ‘나’를 자각하게 되고 그 ‘나’의 母胎인 공동체를 생각하게 된다.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게 하는 윤리와 사상의 교육이 모든 교과의 맨앞에 와야 할진대 중대한 이 점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